[박근종 칼럼] 미래의 길목 선점하는 중국, 잠자는 ‘제조업 DNA’ 일깨워 발전시켜야

칼럼 / 편집국 / 2025-10-17 14:59:17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반도체 제조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정부의 대중(對中) 규제가 갈수록 거칠고 집요해지고 있다. 작년 말엔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고, 올해 4월부터는 저성능 AI 칩까지 수출을 통제했다가 중국 매출의 15%를 정부에 납부하는 조건으로 수출을 재개하기로 한 가운데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반입하는 경우 건별로 허가받게 한다고 지난 8월 29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앞서 미국 정부는 2022년 10월부터 미국산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면서 동맹국 기업에 국한해서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장비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런 예외 조치를 아예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려는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 강화에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입게 됐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서 각각 D램의 40%와 낸드플래시의 20%를 생산하고 있다. 범용 제품이지만 장비 교체 시기에 미국 정부의 수출 허가가 지연되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자칫 미·중 관계가 나빠지면 장비 반입이 아예 차단될 가능성마저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의 견제에도 중국은 기술 자립 속도를 높이고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광물 생산·수출을 통제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반도체 생산부터 AI 칩 설계, 반도체 장비 제작까지 국산화하는 것이 중국의 목표인데 미국 ‘빅테크(Big tech)’의 AI 모델과 성능이 비슷한 ‘딥시크(Deep Seek)’를 개발하는 등 구체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내년 AI 반도체 생산량을 3배로 늘린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동맹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대중 규제를 강화하는 건, 미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중국의 반도체 자강(自强)을 앞당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점을 들어 미국 정부를 적극 설득해야 한다. 이번 조치가 120일 후부터 시행되는 만큼 한미 정상회담 후속 실무협상에서 우리 기업들이 장비 반입 허가로부터 면제 조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한국 기업이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중국은 더 이상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다. 지금 당장 경제성이 없거나 성숙도가 낮아 다른 나라들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기술을 미리 개발해 놓고 그 시장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미래의 길목을 선점(先占)하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나중에 시장이 열렸을 때는 중국 기술이 그 산업의 표준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다. 당당히 ‘게임 체인저(Game-Changer)’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원전·배터리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은 물론, 인공지능(AI)·로봇·드론 등 미래 산업 전반에 걸쳐서 ‘먼저 가서 길목을 지키는’ 중국의 전략은 한국의 미래를 아예 송두리째 없애고 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답도 중국의 성공 전략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 목도(目睹)되고 있는 현실이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시장 점유율 35%를 차지하는 글로벌 강자(强者)였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 ‘닝더스다이(CATL)’와 중국 최대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 등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60%를 넘었고 국내 업체들은 20%로 15%포인트나 급락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 게 되었는지 냉정히 뒤돌아 곱씹어 봐야 한다. 배터리는 고급 고가인 ‘NCM 배터리(니켈·코발트·망간 기반 삼원계)’와 저급 저가의 ‘LFP 배터리(리튬·철·인산 │ LiFePO₄의 앞 글자)’로 나뉘는데 우리나라는 LFP는 도태될 것으로 보고 NCM에 치중했다. 하지만 중국은 집요하게 값은 싼데 효율은 괜찮은 LFP 개발을 전력 추구해 결국 성공시켰다. 우리가 그 가능성을 보고 시작했을 때 이미 길목을 중국이 지키고 있는 형국이 된 것이다. 중국은 차기 배터리인 ‘나트륨 이온 배터리(Naxtra │ 낙스트라)’도 먼저 상용화에 성공해 다음 길목까지도 지키고 있다. 앞으로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중국의 장악력도 덩달아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아직 앞서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도 중국의 길목 지키기가 점점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낸드플래시(NAND Flash)’ 시장에서 절대 강자였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른바 ‘단수 쌓기’ 경쟁에 몰두하는 사이, 중국 YMTC(長江存儲科技 │ 양쯔 메모리 테크놀로지)는 전혀 다른 공법인 ‘본딩(Bonding)’ 기술을 개발했다. 이 중국 기술은 단숨에 판을 뒤집을 수 있는 ‘게임 체인저’의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기존 기술로는 한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보고 아예 새 장을 열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이 길목을 지키다 미래에 큰 시장이 열리면 한·중 반도체 전쟁은 역전될지도 모른다. 특히, 기술의 길목을 선점한 뒤 시장이 커지기를 기다리는 중국 전략의 핵심 중 하나가 특허를 통해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는 것이다. 통신·AI·전기차 등 미래 산업에서 표준 장악은 ‘고기를 잡는 법’을 넘어 ‘어장(漁場)의 소유권’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산업 전체의 부와 권력을 통제하는 초강력 전략이다.

중국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HUAWEI)’는 4G 시대까지는 후발 주자였음에도 남보다 먼저 5G 표준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을 펼쳤다. 5G 기술 구현에 있어 꼭 필요한 ‘표준 필수 특허(SEP │ Standard Essential Patent)’를 9,597건 확보해 2위인 CDMA(코드 분할 다중접속)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퀄컴(Qualcomm)’의 8,046건을 따돌렸다. 미래의 길목을 선점한 것이다. 이제 5G 기기를 만드는 거의 모든 기업이 화웨이에 로열티(Royalty)를 내야만 한다. 화웨이는 미국의 집중적인 표적 제재에도 무너지기는커녕 더 번성해 이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글로벌 리더가 됐다. 그 이유 중 하나가 5G 표준 장악의 힘이다. 지금 화웨이는 6G 표준 논의에서도 AI와 네트워크 결합 기술 등을 제안하며 앞서가고 있다. 6G 길목도 선점해 시장이 열리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전 세계 제조업 생산의 31%를 차지한다. 2위인 미국(16%)의 두 배에 달하고 일본·독일·인도·한국 등 3위부터 10위까지 합친 것보다도 많다. 중국의 ‘31%’ 안에는 하늘(드론 시장 70%), 땅(전기차 시장 60%), 바다(조선 시장 70%)가 총망라돼 있다. 그뿐 아니라 과거(봉제 산업)에서 미래(로봇, AI)까지 뻗쳐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신기술 개발, 특허출원, 표준 제정으로 이어지는 전략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중심이 된 국가 차원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일환이다. 중국은 2035년까지 독일·일본을 추월하고, 공산당 정권 100년인 2049년엔 미국까지 넘겠다는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의 핵심은 군사력이 아니라 산업 굴기(崛起)다. 첨단 기술, 미래 기술 개발은 기업이 하지만 그 뒤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 작년 말 중국은 화웨이·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빅테크(Big tech)’ 기업과 전문가 41명이 참여하는 국가 차원의 ‘AI 표준화 기술위원회’를 만들었다고 중국 공업정보화부(MIIT)는 밝혔다. AI 평가·테스트, 데이터셋, 대규모 언어모델(LLM), 애플리케이션 개발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 표준을 제정한 뒤 이를 국제 표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원대한 계획의 총사령탑이다. MIIT는 2026년까지 최소 50개의 AI 표준을 제정한다는 목표다.

제조업의 맨 아래 단부터 맨 위 최첨단까지 모든 것을 삼키려 한다. 중진국도 하지 않는 봉제 산업을 AI로 무장시켜 ‘초격차’ 산업으로 되살려내는 한편에서 드론·로봇 등 미래 산업까지 석권하고 있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선도자(First Mover)’로의 전환은 한때 우리의 목표였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이 구호를 내걸고 노동·교육·금융·공공 등 4대 부문 개혁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지만 정권이 바뀐 뒤 이전 정권의 정책은 모두 적폐(積弊)로 몰려 뒤집혔다. 이후 출범한 정권들은 대부분 5년 임기만 보는 근시안적 시야와 포퓰리즘(Populism)에 매몰돼 미래를 선점할 수 있는 모험적인 정책 수립과 투자에 큰 관심이 없었다. 중국이 미래 첨단 산업의 필수인 전력 확보를 위해 현재 58기인 원전을 2035년까지 최대 180기로 늘리는 계획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있는데, 한국은 탈원전이라는 이념 자해극(自害劇)까지 벌이는 실정이다. 30~40년을 내다보고 산업의 미래 길목 곳곳을 다 지키고 있는 중국 앞에서 우리가 상대가 될 수 있겠는지 되뇌어 봐야 한다. 돈도, 인재도, 시장도 훨씬 많고 큰 중국은 시간제한 없이 일하는데 연구소조차 불을 꺼버리는 우리가 미래 경쟁에 나설 수 있겠는지를 냉정히 자문해 볼 일이다.

여야가 합의로 과학기술 백년대계를 세우고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10년, 20년 일관되게 밀고 나갈 것을 국민 앞에 약속해야만 한다. 기업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낡은 구각(舊殼)과 족쇄 규제를 과감히 혁신해야만 한다. 국내 인력만으론 중국과 경쟁할 수 없다. 세계 최고 인재들을 과감히 불러 모아야만 한다. 우리가 먼저 가서 지킬 수 있는 길목이 무엇인지도 찾아내야만 한다. 중국과 모든 분야에서 경쟁할 수는 없다. 반도체, 바이오, 조선, K컬처 등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투자해야만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예 미래가 없어질 판이다. 우리 제조업엔 수십 년간 산업 현장을 지키며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신화를 써 내려온 세계 최고의 장인(匠人)들이 있다. 수십 톤(t)짜리 강판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붙이는 용접 명장(名匠)의 손기술, 미세한 소리로도 기계의 이상을 감지하는 설비 전문가의 감각, 반도체 수율 0.1%를 좌우하는 베테랑 엔지니어의 ‘노하우(Knowhow)’처럼 ‘돈’이나 ‘매뉴얼(Manual)’로 전수할 수 없는 소중한 암묵지(暗默知)는 산업화 1세대로부터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유산이자 자산이다.

결국 피해 갈 수 없다면 싸워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안에 숨어 잠자고 있는 ‘제조업 DNA’를 서둘러 일깨우고 발전시켜야만 한다. 그렇게 명장(名匠)들의 기술과 혼을 AI 化 시켜야 한다. 포스코의 ‘등대 공장’이 단적인 예다. 장인의 움직임을 센서와 비전 AI로 포착해 로봇에 학습시키고, 문제 해결 과정을 Data 化 했다. 전 제조업으로 확산돼야만 한다. 연구소와 생산 현장에 새로운 동기도 부여돼야만 한다. 우리 산업 전반에 걸쳐 매너리즘(Mannerism)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구도 적고, 시장도 좁고, 자원도 없고 기술도 어중간하고 지원도 어쭙잖다. 다시 한번 돌격·압축 성장의 ‘한강의 기적’ 속도를 내지 않으면 먹거리 자체가 없어질 수밖에 없다. 여·야 합의로 신기술과 신산업을 옭아매는 낡은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고 ‘선(先)허용 후(後)규제’ 원칙을 확립해 기업들이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만 한다. 중국의 혁신 속도를 절반이라도 따라잡지 못하면 우리 제조업의 미래는 요원(遙遠)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은 우리 안에 잠자는 ‘제조업 DNA’ 일깨워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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